자유게시판

  • 홈 >
  • 나눔공간 >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사계명: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설교전문 운영자 2022-03-20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41

http://tbbc.onmam.com/bbs/bbsView/32/6057862

본문: 신명기5:12-15

 

제목: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최용수목사

날짜: 2022년 3월 20일 

 

 

서론: 오늘 십계명의 네번째 계명을 본문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다.

 

 

 

본론:

 

1. 안식의 의미는 기쁨, 회복, 보호입니다.

 

1)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기뻐하는 날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14절을 봅시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안식일, 안식은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사역을 다 마치고 안식하신 7일째와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6일동안 행하시고 7일째는 쉬셨다. 왜 쉬셨을까요? 몸이 피곤해서, 고단해서 쉬었을까요? 아니다. 하나님은 피곤하거나 쉼 자체가 필요한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6일째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창조사역을 마치신 후 7일에는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을 보시며 기뻐하셨다. 하나님의 기쁨, 이것이 바로 안식의 의미이다.

 

  다시 말해 안식이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높여드리는 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 드리는 날이 안식일이다. 단순히 쉼을 얻는 안식의 개념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사역기뻐하는날이 안식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일로부터 쉼과 회복과 충전의 날

 

  두번째 안식의 개념에는 중단’, ‘멈춤’, ‘회복의 개념이 있다. 13절을 읽어봅시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사역으로 행한 것같이 사람들에게도 안식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각자가 해야 할 일, 노동하는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안식은 6일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잠시 멈추고 중단한다는 의미도 있다.

 

  기계도 멈춤없이 계속 돌아가면 과열되고 수명 단축을 가져오고 제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사람도 동일하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잠시의 멈춤과 중단은 낭비가 아닌 필수적이다. 그래야 재충전되어 일할 수 있다.

 

  이러한 쉼, 휴식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나머지 6일을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안식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6일동안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며(노동, 공부, 활동)노동을 신성한 일로 여기는 소명과 사명에 헌신한다는 열정 있는 삶의 정신이 있다. 그래야 7일 째의 쉼과 휴식을 맞이하는 의미가 있다. 매일매일을 놀고, 맡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휴식은 잠시 멈춤이나 진정한 휴식으로 작용할 수 없다. 지금은 주 5일 업무가 대세이지만 예전에는 주6일을 일했다. 직장인도 토요일 근무를 했고, 학생들도 토요일에 학교를 다녔다. 시대가 점점 일보다는 휴식과 안식을 강조하면서 경제성장도 더불어 이루어져서 이제는 주 5일이 대세이다. 그런데 또 주 5일도 많다고 해서 더 쉬자고 한다. 아마 앞으로는 주4일을 말할 것이다. 그러면 금요일부터 쉰다. 또 여기서 더 나아가면 주 3일을 근무, 2일 근무, 1일근무하고 나머지를 다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무조건 많이 쉬고 일은 적게 해야 성공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각자 맡은 바 일이 있다. 이것을 가리켜 기독교에서는 소명이라 말한다. 하나님이 각자를 불러 하게 하신 일, 이것은 거룩한 부르심이다.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 기업인, 주부 등 각자가 맡은 사명과 소명이 있다. 그것을 열심히 하고 쉬는 것이 의미가 있지 그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단순히 쉬는 것 만을 추구하는 것에는 진정한 쉼도 안식도 없다. 기독교는 열심히 일을 하고 그 다음에 오는 안식 가운데 일상의 멈춤, 회복, 충전을 중시한다. 기독교는 결코 일하지 않는 것을 행복, 무노동, 조기 은퇴, …이것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는다. 일 가운데 우리는 의미를 찾고 그 일을 통해 또한 사회에 기여한다. 일은 자신을 이롭게 하고 주변을 이롭게 한다. 일과 쉼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때 안식이 의미가 있다.  

 

3)  안식에는 약자에 대한 보호와 구원의 개념이 있다.

 

  14절을 보자. 안식일에는 주인 혼자 쉬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뿐 아니라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 심지어 가축들과 손님들도 일하지 않고 쉬게 하였다. ‘너 같이 안식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지위와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함과 평등함과 인간으로서 권리를 더불어 누리라는 하나님의 보편 타당한 의도를 볼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7일 중 하루를 반드시 시게 하셨을까? 그 이유는 15절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래 애굽의 종이었다. 종은 자신의 마음대로 쉴 수 있나? 없다. (노예)은 쉼이 없다. 일하는 기계와 같다. 아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노예들을 애굽인들은 무자비하게 대했다(5:13-14)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이스라엘 노예들은 짚없이 벽돌을 매일 할당량에 맞추어 만들어야 했고 그 가운데 구타와 폭행은 다반사였다. 그리고 적절한 휴식은 기대할 수 없었다.

 

  노예와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사람들은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종이 아닌 자유의 몸이 되고 자유자가 되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나님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그랬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 생기게 되고 그들을 다스리게 되면서 자신도 자비 없는 주인으로 전락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자유자가 되더라도 그들 품에 들어온 종들과 더불어 함께 쉼을 누리도록 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안식을 제정하신 또 다른 이유이다. 약자를 향해서도 종들도 주인(하나님을 아는 주인)과 동일하게 안식에 참여하게 했다. 이것은 내가 누리는 것만큼 타인도 그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류평등, 박애이고 보편적인 평화정신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어떤 정신인가? 더불어 살자가 아니라 너희는 우리와 같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자국이기주의, 자국 중심주의이며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잘못된 게르만족 우월주의와 차이가 없다. 공존이 아니라 타인의 삶이 어찌되든지 상관없이 우리만 잘살면 된다는 것은 도둑, 강도들이 하는 것이다. 냉혹한 국제사회의 경쟁과 도전가운데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약소국의 아픔을 본다. 이것이 전세계인 들로부터 푸틴의 러시아가 지탄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부강하길 바라지만 앞서 언급한 그런 부도덕한, 타국을 빼앗는 그런 부강은 아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마음,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인이나 종들도 같은 권리 같은 쉼을 누리게 만드는 그런 인류평등과 존중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이러한 원리, 더불어 공존을 추구하는 민족에게 하나님은 더욱 복을 주실 것이고 인류전체에 기여하는 민족이 될 것이다. 주인과 더불어 노예들도 더불어 공존과 공생을 추구하는 안식의 의미를 하나님이 주셨다. 약자를 향한 보호이기도 하고 죄와 사망의 노예로부터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메시지 이기도 하다.

 

l전환: 이런 의미로 안식과 안식일을 주셨다. 그렇다면 이 날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

 


2.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12).

 

1)  거룩하게는 안식일의 주인 되신 주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거룩하게는 안식일을 주신 이유와 목적에 맞게 이 날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주신 날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창조주를 예배하는 날이다. 예배 드리는 날로 안식일을 주었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적으로 이 날의 본래 의미를 왜곡해 안식일을 무엇 무엇을 하면 안되는 날로 만들어 버렸다.

 

  안식일에 사람이 다쳐도, 동물이 위험에 빠져도 안식일이란 이유로 족쇄를 걸어버리고, 오히려 안식일 본연의 의미를 점점 규정화, 명문화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고,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는 일을 하여도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 복음서 (12:8, 6:5, 2:28)모두에 하신 말씀은 안식일의 주님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라구요? 바로 예수님이시다. 주인 되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 말씀하신 바를 듣고 배우는 날이 주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주일을 온전히 예배 드리는 것이 거룩하게 이날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주일의 하루를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십일조의 의미와 동일하다. 십일조 역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십일조를 통해 고백하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의 하루, 주님이 부활하신 첫날, 주일을 예배함으로 내가 주님의 소유이며, 구원받은 자이며 주님이 나의 인도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을 주일로 드리는 것이 이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2)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을 때 삶이 파괴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이 거룩함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함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지 않고 주어진 자유로 자신들만을 살찌우고 심지어 가축이나 땅도 쉬게 하는 원리를 잊어버림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명령을 지키지 못함으로 70년동안을 강제로 안식일로 만들어서 70년 바벨로 포로기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날을 주님의 날로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일, 관여하는 일에 복이 아니라 화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주일성수라는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지만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기뻐한다는 그 원리와 중심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쁜 일들 또는 여러 모양으로 바빠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원리를 놓치면 신앙의 근본이 무너지고, 신앙의 근본이 무너지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허물어져서 우리의 삶이 사람중심, 일 중심으로 가면 그것 자체가 안식의 파괴, 회복의 파괴, 신앙관계의 파괴, 삶의 파괴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예배와 주일의 우선순위를 먼저 설정하는 성도 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기쁨과 회복과 충전의 날이 우리를 보호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은 다시금 우리에게 안식일의 주인 되신 주님께 온전히 예배 드리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일을 성수함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며, 주일을 주일 답게 예배 드리며 주님과 더불어 참된 안식, 회복, 쉼과 평안을 누리며 충전의 시간,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기를 바란다.

이 네번째 계명을 살펴보았는데 십계명을 하나님을 위한 수직적 계명(1-4), 이웃을 위한 계명(5-10)으로 나눌 때 사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연결하는 연결 계명으로 보기도 한다. 위로 하나님, 옆으로는 사람과 이웃을 잘 섬기는 것의 연결고리로 사계명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예배 드리는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라는 것이다. 주일을 잘 섬김으로 주일을 주일 되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우리 되길 바란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창립 52주년 감사예배 및 안수집사 안수식 운영자 2022.07.09 0 200
다음글 김진연모친님을 생각하며 운영자 2021.09.08 0 226